할아버지와의 관계 2010년년도 6달로 돌아가다.
“이 돈이 저보다 운이 좋지 않은 아이들을 공부하는 데 사용되도록 해주세요.“
생계를 꾸려야 하는 산촌 노인이 허름한 자루를 메고 시청을 찾아온다. 200만 원을 꺼내당신이 말한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1954년화천군 상서면 다목리 군생활로 인해 1964년나는 그 이후로 거기에 살았다.. 가난 때문에 할머니는 32년 전그는 세 살 때 병으로 죽었다.
그런 경우에 “압도당하다”라는 용어가 사용됩니까?.
할아버지도 당뇨 합병증 악화로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고민 끝에 할아버지는 다리 절단 대신 약물 치료를 결정. 장애인으로서 주변의 시선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리를 질질 끌며 휴지를 줍고 고철을 모아 생계를 꾸렸다.. 기본돌봄 대상자로 선정된 할아버지는 당시 군에서 컨테이너 주택과 한 달을 받았다. 3910,000원 정도의 보조금도 받았습니다..
쓰레기를 모으기 위해, 하루만 벌고싶다 4천 원 정도. 운좋게 버려진 솥이나 동을 주운 날, 하나나도 만 원 벌었다..
그렇게 2수년간 모금된 총 자금 200장학금으로 10,000원을 기부한 것입니다..
“할아버지! 이 돈은 받은 거로 가져갈 테니 맛있는 거 사서 드세요., 생활에 사용“
할아버지의 인생을 누구보다 잘 아는 당시 동사무소 사회관의 말이다..
“아직 내 계정에 130만 원 있어요. 그러니 이 돈을 받아주세요”
말을 남기고 총을 들고 나간 할아버지. 돈을 더 입금하지 않는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당시 구청 홍보실장이었던 나는 이 내용을 보도자료 형식으로 언론에 전달했다., 김할아버지에게 ‘실버 엔젤‘별명을 얻었다.
그럼 할아버지, 후원자님들의 도움은 없었는지 여쭈었던 기억이 납니다..
“군대(구역)하다 39연대장 감사합니다.”
구청에서는 조부에게 컨테이너 상자를 지원하고 매주 반찬을, 명절에는 쌀을 보내주었다.. 39휴일마다 현금으로 지급되는 연대 사령관 101인당 10,000원을 주면서 격려해주었다고 합니다..
‘당신의 소원은 무엇입니까‘내 질문에그는 ‘부유한 삶‘어느 것도 아니다 ‘아파트 개선‘그것도 아니었다.
“언덕을 넘으면 명월리에 군인 사택이 있다., 나는 빈 병을 가져가지 않습니다. 폐지를 가져가게 해주세요.“이었다. 당신이 주운 폐지를 판매 200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천만 원을 기꺼이 내어주신 할아버지..
길을 가던 어느 겨울, 그는 차갑게 살고 있었고 기름값을 아끼고 있다고 했다..
공원묘지에서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만난 곳은 컨테이너가 아니었다 ‘공공묘지‘~였다.
그는 일흔여덟에 생을 마감하고 한 줌의 잿더미로 남겨졌습니다.. 나는 묘지 한구석의 작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묘 앞에 엄숙하게 섰다..
나는 촌장에게 전화를 걸어 그가 왜 죽었는지 알아보았다..
“최근에, 제 생각에 당신은 폐지를 줍기 위해 스쿠터를 타고 언덕을 넘어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합니다.. 연고가 없으니 마을에서 장례를 치른다., 나는 화장되어 공원 묘지에 묻혔다..”
아마도 할아버지의 요청으로 내가 한 일 때문일 것입니다.(언덕 위 아파트 단지에서 쓰레기 줍기)그렇다면 큰일이다.. 그럼 어때?, 확인해보니 맞네요.
내가 할아버지일 때 ‘언덕 반대편 아파트에서 쓰레기 줍기‘요청을 거절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신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생각이 한동안 저를 괴롭혔던 기억이 납니다..